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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시장의 사이클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5단계 주기 분석

junbbang 2025. 7. 9. 09:34

 해운 시장은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보다 더 뚜렷한 ‘주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해운 산업이 공급 탄력성이 낮고, 외부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은 발주에서 인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 번 증가한 선복량은 단기적으로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 흐름에 즉각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 이로 인해 해운 시장은 일정한 흐름을 따라  5가지 단계—침체기, 회복기, 호황기, 과잉기, 하강기—를 반복하며 움직인다.
이번 글에서는 이 다섯 가지 단계를 순서대로 분석하여, 해운 업계가 어떤 원리로 흥망을 반복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해운 기업, 투자자, 정책 결정자들이 시장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시한다.

해운 시장의 사이클

 

 1단계 – 침체기 (Depression Phase)

해운 사이클의 출발점은 ‘침체기’다. 이 시기에는 세계 경제 둔화, 교역량 감소, 유가 상승 등 복합적인 악재로 인해 운임이 극단적으로 하락하고, 선복량은 과잉 상태가 된다.
해운 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노선 감축, 일부 선박 운항 중단, 해고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일부 중소 선사는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되며, 시장 집중도가 일시적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비관론이 팽배하며, 신조선 발주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HMM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시기를 거치며 공적자금 투입과 채권단 관리라는 구조조정 과정을 겪었다. 전반적으로, 침체기는 생존에 집중하는 시기이며 공격적인 확장보다 수익률 방어가 우선이 된다.

 

 2단계 – 회복기 (Recovery Phase)

침체기를 지나면서 시장은 서서히 회복기에 진입한다. 이 시기에는 수요가 점진적으로 살아나고, 항만 처리 속도와 운항 효율성이 회복되며 운임도 바닥에서 부터 서서히 상승한다.
회복기에 진입한 선사들은 조심스럽게 노선 재배치, 서비스 재개, 인력 재충원 등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선박 개보수나 친환경 설비 업그레이드와 같은 전략적 투자도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심리적 회복이다. 투자자와 화주 모두 해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회복하면서, 장기 계약이나 얼라이언스 체결 등 중장기적 파트너십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다. 공급은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소폭의 수요 증가에도 운임이 빠르게 반영되는 특성이 있다.

 

 3단계 – 호황기 (Boom Phase)

회복기를 거쳐 해운 시장이 전면적인 확장 국면에 진입하면, 호황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는 운임이 급등하고, 선사들의 실적이 급격하게 개선된다.
전세계적으로 수출입이 활발해지면서 물동량은 정점을 찍고, 운임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수 있다. 2021년 팬데믹 기간의 슈퍼사이클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시에는 중국–미국 서부 항로의 운임이 40' 컨테이너 기준 15,000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호황기에는 선사들이 대규모 신조선 발주, 신규 항로 개설, 투자 확대에 나서며,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의 주주 친화 정책도 활발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수요 예측 실패와 과도한 투자로 인한 후폭풍이 뒤따를 가능성이 큰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고, 중장기적 수익 모델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4단계 – 과잉기 (Oversupply Phase)

호황기에 발주한 선박들이 인도되기 시작하면, 시장은 과잉공급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실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빨리 증가하게 되며, 선복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선사들은 이 시점에서도 운임 유지를 위해 프로모션, 할인 정책, 선복 공유 등을 시도하지만, 시장 가격은 점점 하락세로 전환된다. 일부 선박은 운항 수익성이 맞지 않아 운항하지 않고 대기 선박으로 전환되고, 항만 정체 현상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잉 상태는 기업 간 경쟁 심화, 운임 인하 경쟁, 서비스 질 저하 등으로 이어지며, 시장 전체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과잉기에 들어서면 화주들도 장기 계약보다는 저렴한 스팟 운임을 선호하게 되며, 선사의 전략적 대응력 부족이 시장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부 해운사들이 앞서 발주한 선박을 취소하거나 중고 선박 매각에 나서며, 일시적인 공급 조절 시도도 발생하지만, 구조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5단계 – 하강기 (Decline Phase)

과잉공급이 누적되고, 글로벌 경제가 둔화되면 시장은 다시 하강기에 접어든다. 이 시기에는 운임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며, 수익률이 다시 악화된다.
기업들은 운항 효율화를 위해 비수익 노선 철수, 선박 운항 축소, 구조조정을 진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얼라이언스 재편이나 업계 M&A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강기는 침체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로서, 기업들이 대응에 실패하면 재무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고비다.
우리나라의 HMM을 포함한 대형 선사들은 하강기에 접어들면 투자 속도 조절, 유연한 계약 전략, ESG 기반 운송 가치 제공 등 차별화된 생존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이후 시장은 다시 침체기를 맞으며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

 

 마무리

해운 시장의 사이클은 침체기 → 회복기 → 호황기 → 과잉기 → 하강기의 다섯 단계를 반복하는 구조를 따른다. 이 흐름은 단기적인 정책이나 요인으로 쉽게 바뀌지 않으며, 해운 기업의 전략 수립과 투자자 의사결정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이 점차 복잡해지는 현재, 이 사이클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시장 대응력과 생존 가능성 확보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HMM을 비롯한 주요 선사들은 이 사이클에 맞춰 선박 운용, 투자 타이밍, 리스크 분산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단기 이익보다 중장기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영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이클의 흐름을 이해하면 단기적 시장 혼란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며, 이는 기업뿐 아니라 정책 수립자에게도 전략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한다.